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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어느덧 7주째로 접어들었다. 고인의 49재를 눈앞에 둔 지금 그의 죽음의 의미와 그가 남긴 유산을 돌아보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노무현이 남긴 방대한 기록만큼이나 노무현 집권 5년, 혹은 그의 전 생애를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박정희나 김대중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듯 노무현에 대한 평가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필부의 입장이긴 하지만 나 또한 49재를 맞이해서 노무현을 사후 평가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2002년 대선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흔히 말하는 '진보정치인'에게만 표를 주었으니, 전통적인 '노빠'의 편향된 평가라는 성급한 비난은 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노무현을 평가하려고 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 사회가 선험적으로 규정한 틀에 부닥치기 일쑤다. 친북좌파, 좌빨, 퍼주기, 막말, 아마추어, 오기 정치, 승부사 등등의 단어는 노무현과 항상 붙어 다녔다. 이런 꼬리표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주로 붙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은 객관적인 잣대와 현실에 대한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맹목적인 매도에 가깝다. 노무현 평가에 대한 보수언론·한나라당의 '프레임'
예를 들어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기사를 금판으로 떠서 갖다 바친 <동아일보>는 남의 친북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이런 '친북'적이고 '찬양고무적'인 과거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한나라당은 자신이 집권했던 지난 김영삼 시절 전쟁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과도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퍼주기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얼마만큼 지원하면 퍼주기의 멍에를 벗을 수 있을까? 노무현 집권 3년이 지났을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까지 김대중-노무현 8년 동안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모든 금품의 총액은 민간 정부 다 합해서 4조 원가량이다. 연평균 5천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통일부의 자료에 의하면 노무현 5년간 연평균 2843억 원이 북한에 지원되었다. 이는 OECD에서 권고한, 못 사는 나라 원조 액수(연간 GDP의 0.5%, 한국의 경우 대략 3~4조원)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여기에는 예컨대 개성공단이 들어섬으로써, 전쟁 발발시 남한에 가장 위협적인 북한의 장사정포가 후방으로 수 km이상 밀려난 경제 및 안보효과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은 김대중-노무현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퍼주기를 포함하고 있다. 퍼주기 문제는 북핵문제와 연결되기도 했다. 노무현이 퍼준 돈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는 논리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면 햇볕정책으로 퍼주기를 할 것이 아니라 강력한 대북압박으로 핵을 포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 또한 이명박 정부의 강한 압박에도 북한이 최근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여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게 됨으로써 허구임이 명백해졌다. 북핵문제는 다시 국가안보의 문제로 이어진다. 보수 세력은 노무현을 친북좌파로 규정하면서 그 때문에 국가안보를 소홀히 한다고 공격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노무현 시절에 남한의 국방력이 크게 증대했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밀리터리 마니아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이지스함이나 F-15K, 순항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상당수 도입하면서 해공군력을 이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방력 강화는 역설적이게도 '빨갱이 원조'라는 김대중 시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은 자신의 햇볕정책이 안보 공백을 몰고 올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해서라도 뒤로는 말없이 국방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군 중심의 재래전만 생각하다가 최첨단의 해공군력을 중심으로 동북아 전체를 고려한 전략적 고민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강조하던 보수 세력과 이명박은 오히려 집권하면서 국방력 강화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성남비행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 말기 어렵사리 성사시킨 고고도 무인정찰기 도입도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무작정 연기되었다. 새로이 수정된 국방개혁 2020에서는 해군의 기동함대 숫자가 2개로 줄었고 각종 해공군 관련 전략 사업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될 상황이다. 오죽하면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인 동아일보 자매지(주간동아 2009년 7월7일자)에서 안보에 관한 철학이 없다고 대놓고 비판했을까. 누가 더 퍼줬을까... 누가 더 싸가지 없는 막말을 썼을까 구체적인 정책보다도 노무현의 '싸가지 없는 막말' 때문에 노무현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무현이 막말을 많이 했다고 객관적으로 주장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막말의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 둘째 그 기준에 따라 역대 대통령이 막말을 쏟아 낸 회수를 조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이런 식의 과학적인 분석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했다는 막말들---"머리를 조아리고" "깽판 쳐도" "조지고" 등등---이 이명박 대통령의 막말---"하나님께 봉헌" "마사지를 받을 때" "안창호 씨" 등등---보다 크게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적어도 노무현은 이명박처럼 나이 드신 시장상인들 모아 놓고서 하대하며 반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을 '싸가지 없는 막말'의 대명사로 인식할까? 혹시 공정한 심판관 노릇을 해야 하는 언론이 노무현의 막말은 부풀려서 보도하고 이명박의 막말은 애써 감추려고 한 탓은 아닐까? 그러나 심정적으로 이런 가설을 받아들이기 전에 실제 보도행태가 어떠했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 가설이 이런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된다면, 지금 진행 중인 방송법의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노무현은 준비되지 않은 아마추어라는 비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족한 인재풀이 한국 사회 전체의 한계적 요인이라면 그 멍에를 유독 노무현만 짊어지는 것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 운영을 많이 해 본 경험을 가진 보수 정권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골라서 꾸렸다는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내각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만약 노무현 시절에 어느 장관이 1인 시위하는 학부모에게 세뇌 당했다고 면박을 줬다면 그 장관은 일주일을 자리보전하기 힘들었을 게다. 요컨대 노무현을 바라보는 보수 세력의 프레임에는 억지와 거짓과 불공평함이 넘쳐난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이들 힘 있는 사람들의 프레임이 공공연하고도 광범위하게 강요된다. 지난 5년 내내 그렇게 재미를 본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그런 힘과 능력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정권을 바꾸자마자 기세를 올렸다. 아마도 노무현 정도의 전직 대통령을 수갑 채워 감옥에 쳐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과 기만에 기초한 정권은 얼마지 않아 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미국과의 잘못된 협상으로 국민건강과 검역주권을 포기하더니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공권력을 무리하게 동원해서 틀어막기 시작했다.(흔히 순수했던 촛불집회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으로 오염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2008년 5월 2일 첫 촛불집회의 공식명칭은 이명박 탄핵추진 집회였다.) 모든 잘못은 국민에게 있다?... 억지와 거짓과 불공평함 그 뒤로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는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었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와 공안당국은 헌법에 왜 표현의 자유가 명문화되어 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표현의 자유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과 똑같은 생각을 표현할 자유가 아니다. 그런 자유는 굳이 헌법에서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 표현의 자유가 최상위 법인 헌법에 명시된 이유는 주권자인 국민이라면 그 어느 누구라도 권력자에 반대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권력자에 적대적인 사상은 헌법에서 보장되지 않는 이상 사회의 그 누구로부터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 체제에 적대적인 의견조차도 표현할 자유를 보장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표현의 자유다. 현 정권이 이런저런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으려 한다면 먼저 대한민국 헌법부터 고쳐야 한다. 이런 면에서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잡아 가두고, '적대감'이라는 단어 때문에
실패하는 정권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국민들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개는 이 과정에서 공권력이 정의롭지 않게 동원된다. 이명박 정부는 이 점에서 매우 적극적이다. 잘못된 협상에 대한 전 국민적 저항을 일개 TV 프로그램이 선동한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국가경제의 위기상황은 이름 없는 한 명의 누리꾼 탓으로 둔갑시켰다. 기본적인 생존권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어느새 특공대가 진압해야만 하는 테러리스트로 몰려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인파는 잠재적인 질서파괴자 취급을 받았다. 공권력이 정의롭지 못하면 국민은 불행하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무현이 서거했다고 해서 이명박 정권의 인식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족히 20년은 되돌려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찾으려면 더 많은 피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물리력도 부족한 모양인지 정말 사람들의 머릿속까지 뜯어 고칠 태세다. 극장마다 대한늬우스를 틀고 조·중·동에게 보도채널을 안겨주면 우리는 정말 유인촌의 말마따나 세뇌를 피할 길이 없다. 그렇게 국민을 '설득'하고 나면 4대강이든 운하든 개헌이든 선거든 뭐가 됐든 보수 기득권들만의 천년왕국은 시간문제다. 한국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가 되는 셈이다. 방송법 처리를 코앞에 둔 요즘 나는, 누군가가 좋은 뜻으로 생각해 냈을 "I'm your Energy(아임 유어 에너지)"라는 광고카피에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인간은 그저 기계를 위한 건전지일 뿐이라고 네오에게 말하던 모피어스의 말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명박 치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수의 강자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건전지와 얼마나 다른가.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거리에 백만이 모여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 세상은 무척 답답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의 말처럼 벽보고 욕이라도 할까? 교수님들과 정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동료 연구원들로부터 굳이 설득되지도 않을 사람들과 왜 그리 열심히 논쟁하느냐는 질문을 듣곤 한다. 한번은 노무현이 너무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고 불평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분을 설득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단지 내가 구체적인 수치와 퍼주기의 전략적 가치를 충분히 설명한다면 아마도 그 분은 다른 곳에서 지금처럼 자신 있게 '노무현=퍼주기'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적어도 그렇게만 된다면 근거 없는 논리가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가 노력하는 만큼 세상은 바뀐다. 나는 그런 믿음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대부분의 운동권들도 나처럼 긍정적인 생각의 소유자들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아직 연구원 신분인 나로서는 물론 그렇게 윗사람과 언쟁을 벌이는 게 쉽지 않다. 인터넷에 이런 기사를 쓴 대가로 불이익을 받지 않느냐는 염려도 수시로 듣는다. 그런 주위의 염려를 들을 때마다 나는 노무현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떠올리곤 한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 나는 솔직히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존재의 위협을 크게 느낀다. 아마도 어머니가 이 글을 보신다면 "너는 뒤로 빠져라"라고 바삐 전화라도 하실 게 분명하다.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만 하는 역사는 아직도 계속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역사에서 이 비겁한 역사를 청산하려 했던 정치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큰 위안이 된다. 우리들의 조그만 노력들이 모여 그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 대통령의 노력이 다시 큰 힘이 되었듯이, 지금 우리의 작은 노력들은 제2의 노무현을 또 한 번 탄생시켜 그 비겁한 역사를 기어이 청산할 것이다. 무엇이든 해보자, 민주주의는 노력하는 만큼 얻어진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선덕여왕>을 보면 덕만은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마다 "무엇이든 한다." 그렇게 애써 노력하다 보면 하늘에서 금덩이가 떨어질지 지나가던 공주가 살려줄지 누가 아는가? 덕만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 기우제도 지내고 땅도 파고 또 전쟁터에서 싸운다. 지금 우리는 죽어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있는가? 민주당 선진당 창조당 민노당 진보신당 같은 야당에 바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김영삼과 김대중은 예전에 독재에 맞선다며 목숨까지 내걸었다. 지금 정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경각에 달렸다면, 그렇다면 의원직은 물론이고 당신들의 목숨을 걸어라. 이미 적지 않은 국민들이 숨져가지 않았던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탁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라. 세상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딱 그만큼만 변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떤 이는 인터넷 게시판을 보고 시청광장에 나갔다가 사람이 얼마 없어서 실망한 나머지 다시는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백만이 한번 모이는 것은 그렇게 사람 없는 집회가 수도 없이 열린 결과이다. 누군가는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자리를 지켰고 누군가는 자기들보다 훨씬 많은 전경들의 조롱을 참으며 그 자리를 지켰고 또 누군가는 전경들의 군홧발과 곤봉에 머리가 으깨지며 광장을 지켜 왔다.
그렇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눈물과 피땀이 쌓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100만 명의 집회에 참가한 한 사람은 100만 분의 1이지만 100명의 집회에 참가한 한 사람은 그보다 만 배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당장에 시급한 문제는 지금 7월 통과될지도 모르는 방송법이다. 방송법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기준과 정보력에 큰 변화를 몰고 온다는 점에서 여느 악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는 방송법이 통과되느냐 마느냐로 큰 갈림길에 놓일 것이며 만약 통과된다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전혀 다르게 기술해야만 할 것이다. 광우병이 우리 몸에 치명적인 단백질을 퍼뜨린다면 방송법은 우리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뇌를 아예 들어내는 것과도 같다. 노무현이 서거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으로 참배에 나섰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은 때늦은 후회로 되돌아왔다.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어쩌면 머지않아 똑같은 후회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피를 흘리고, 마침내 민주주의가 다 죽고 나면 나면 그제야 또다시 '지못미'만 외칠 셈인가? 2009년 7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리 한가롭지 못하다. 무엇이든 해 보자.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리 모두 '침묵하는 다수'에 뒤섞여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힘 있는 자들의 건전지 노릇만 할 뿐이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인터넷에 글도 쓰고 불매운동도 해 보고 집회에도 나가고. 그래, 그 모든 게 여의치 않다면 벽보고 욕이라도 실컷 하자. 민주주의는 우리가 노력하는 딱 그만큼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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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 속에 숨어서또 다시 '지못미'만 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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